Representation
관심 개념은 '소년애'로 설정되었고, 역사 측면에서는 로마와 그리스 시대가 구별된다. 기본적인 쟁점은 소년애의 속성에 관한 것이고, 구체적인 물음은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이다. 플라톤은 육체적인 것과 교육적인 측면을 모두 중요시한 반면, 크세노폰과 플루타르코스는 카틀리지와 마찬가지로 육체적 관계 맥락의 소년애는 본질에서 멀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세 명의 학자는 모두 육체적 아름다움을 과소평가한다.
그 중 크세노폰에 따르면 육체에 매혹된 에라스테스는 불명예스러운 것이라 비판했다. 그런데 에라스테스 중에 그렇지 않은 다른 에라스테스가 존재하므로 상위 범주에서 하위 범주로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한정되다'이란 어구는 정의의 맥락을 가리킨다.
스파르타, 아테네, 그리스, 로마 시대별로 소년애를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비교하는 문항이 8번이다.
로마 공화정 후기는 아테네와 달리 소년애를 처벌했다. 이에 대해 푸코는 소년애를 억제한 결과 델리카투스를 추구하는 행태가 널리 행해졌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는 cause of에 의거한, 즉 델리카투스 확산에 선차적인 소년애의 억제이다. 출제자가 9-④에서 선후성을 교묘하게 뒤집은 것이 흥미롭다.
제정 초기 로마에서는 그리스의 생활 방식을 숭상하는 헬레니즘이 주요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그리스의 생활 방식 중 하나인 소년애가 유입된 것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키케로와 같은 로마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생활 방식의 유입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적 우정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 그 근거는 일상언어 측면에서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에 있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로 제정 초기 소년애는 그 뿌리가 그리스적 우정에 있다고 보았지만 실질적 행태는 자유민 소년을 지적 대화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치부한 점을 지적한다. 요컨대 그리스적 우정은 제정 초기 로마의 발판 위에서 그 속성이 변모된 것이다.
소년애를 바라보는 두 측면만이 정보량의 전부이기 때문에 출제자는 8번 문항 처럼 시대별 양상을 추가하거나 7번과 9번 문항처럼 개념 간 관계를 물어보는 방식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적으로 과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Filtering
- 7번 문항
- ②: 에라스테스를 육체에 매혹된 불명예스러운 자라고 정의하는 것과 에라스테스가 육체에 매혹되었다면 이는 불명예스러운 자에 해당한다고 분류하는 것은 진술의 뉘앙스가 다르다.
- ⑤: 로마 제정 초기에 그리스의 생활 방식을 숭상하는 이들과 지식인 키케론은 구별해야 한다. 일상언어적 추론을 통해 그가 그러한 생활 방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 8번 문항
- ③: 기원전 2세기 로마는 소년애가 억제되었고, 이 시기는 공화정 후기에 포함된다.
- 9번 문항: <보기>에 따르면 도자기에 그려진 장면은 이성애 장면에 비해 훨씬 덜 노골적이므로 소년의 명예와 존엄을 배려하는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 ②: 카틀리지의 해석은 육체적 매혹을 과소평가, 즉 소년애의 사회화 기능에 보다 주목했으므로 정신적인 요소를 중요시한 <보기>의 도자기 장면과 상충하지 않는다.
- ①: 소년애가 소년의 명예와 존엄의 성격을 가진다고 본 골든의 해석은 카틀리지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보기>의 도자기 장면과 상충하지 않는다.
- ③: 그리스인이 느낀 거부감과 로마인이 지닌 결벽적 태도는 모두 소년이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실태를 비판하므로 이 둘은 상충되지 않는다.
- ④: 푸코는 소년애 억제의 결과로 동성애 확산이 일어났다고 본다. 인과를 뒤바꾼 관점은 푸코의 주장을 강화하지 않는다.
- ⑤: 윌리엄스는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제정 초기 로마 연가의 뿌리가 그리스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 결과가 변형되었을 뿐이다.